내가 살고 있는 락빌 메릴랜드 도서관에는 한국 및 다른 언어들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내가 신청해 놓은 책을 픽업하러 간 겸, 오랜만에 한국책이 있는 섹션에서 "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 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빌려왔다. 두 저자의 책에서 배운 점들과 인상에 남았던 것들을 블로그에 남겨본다.
이 책은 10년전 2013년에 공동 제작된 책이다. 백정선 그리고 김의수 라는 두 분의 재무설계사의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놀랍게도 90% 이상은 지금도 동일한 게임의 룰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배웠다. 재무설계사, 혹은 재무상담사를 Financial Advisor라 미국에서는 부른다. 유능한 Financial Advisor는 단순히, 숫자만으로 계획하지 않는다. "상담자의 재정적인 문제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컨설팅과 라이프코치로 이름이 높다." 라는 소개글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소개글을 통해 책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지 상상이 가능했다. 그리고, 재무설계사로서 숫자놀이만을 책에 담은 것이 아니기에 더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장 한장 읽을 수 있었다.
프롤로그의 문장 (추천사)
"은퇴연구소장이 된고 난 후 만나는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제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이다. 그럴 때마다 대답은 간단하다. "은퇴하지 마십시오" 다들 정말 맞는 말이라면서 웃음을 터뜨리지만..."
영국의 대형 은행 HSBC가 22개국 성인 남녀 2만명에게 물었다. 당신은 은퇴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떠올리냐? 자유, 만족, 행복이라고 답한 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두려움, 외로움, 지루함이라 답했다.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준비된 은퇴와 준비 안된 은퇴의 차이일 것이다.
이 책은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하는 방법론에 대한 책이 아니다. 95%이상은 은퇴 준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돈을 모으는 것과 은퇴를 준비하는 것은 같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은퇴 준비 과정(?)을 계획을 짜고, 이를 실천에 하나씩 옮기고 있거나, 이미 은퇴를 하신 분들은 모으는 것과 준비하는 것이 어떻게 다를지 알고 있을 것 같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어구 중에 "Fail to plan, plan to fail" 라는 표현이 있다. 만약 계획 세우는 것을 실패할 경우, 실패를 계획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즉, 계획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핵심 단어를 하나 꼽자면 바로 "계획"이다. 계획 안에는 물론 돈이라는 factor가 들어가지만, 돈의 많고 적음이 계획을 만드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많은 만큼 그에 맞는 계획, 적은 사람들에게는 적은 만큼의 계획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가장 문제는 "어떻게 되겠지.. 뭐" 라는 계획 없는 플랜이다.
조언 한가지, 빨라서 좋은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짜장면 배달, LTE 속도, 노후 준비.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하는 일이지 다리 떨릴 때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노후 준비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가슴 떨릴 때 해야지 다리 떨릴 때 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안 가면 그만인 여행과는 달리 노후 준비는 늦었다고 해서 그만둘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만 둬서도 안된다.
하버드 나온 아들, 유학파 며느리
첫번째 등장 인물부터 심상치 않다. 대기업 본부장인 아버지, 그리고 공부를 잘했던 아들 그리고 하버드까지 가서 아버지의 자랑이었던 아들. 결국 자신의 모든 것들을 희생하며 결혼까지 성공시켰지만, 이 분의 노후에 돌아온 것은 매달 주는 용돈 20만원. 그렇다면 아들이 나쁜 놈인가? 책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다. 아들과 며느리도 나름 살아가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노후, 내가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2013년 (지금으로부터 10년전)에는 무한 경쟁이라는 슬로건 아래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단어였다. 즉, 각 나라마다 제재를 완화하여 싼 제품은 수입하고, 경쟁력없는 산업은 자연스레 도태되는 형태의 자본주의였다. 그런 이유로 농사를 포기한 나라들도 생겼으며, 반대로 한가지 산업이 그 나라를 대표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은퇴와 무슨 관련이 있나? 책의 저자는 열심히 살았는데도 매월 적자에 빚은 늘어나고 노후 준비도 안되는 이 현실은 개인의 무능력이나 불성실함이 아니라 경제 구조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경쟁력 있는 자만 살아남게 되는 무한경쟁 사회가 만들어지고, 가치가 있는 일이나 산업이어도 경쟁력이 떨어지면 도태되는 현상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1위 기업이 독식하는 강자 독식 사회가 생겨나며, 있는 사람들은 더 쉽게 돈을 벌고, 없는 사람들은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과 물가, 그리고 노동 임금의 상승은 당연시 되었고, 이로 인해 대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즉, 국내 시장의 고용 감소, 가계 소득 감소, 소비 심리 위축의 악순환이 반복되며 청년 실업, 경기 불황도 생기게 된다. 10년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많은 부분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들이다.
맞벌이 부부의 함정?
1970년 외벌이 가정보다 2010년 맞벌이 가정이 더 가난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미국의 부모 세대는 대부분 외벌이로 가족을 부양했는데, 오늘날의 가치로 아껴서 충분히 쓰고 저축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이미 고정 비용이 많아져서 외벌이 때보다 저축할 돈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중산층의 소득은 그리 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부자가 되었다.
이 책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참조틀"이라는 단어이다. 즉, 국가가 부자가 되었고, 내 주위 분위기가 부자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이 참조틀이라는 것이 올라가다보니, 중산층 가정에서 지출하는 고정 지출 비용도 같이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더 좋은 핸드폰, 자가용, 여행지가 자연스레 일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책의 전반전인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저자는 이 참조틀의 기준을 주변 사람들이 아닌 각 가정마다 새롭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소제목들을 위에 사진으로 올려보았지만, 몇가지를 적어본다.
월 450 만원을 벌어도 부족하다
노후를 더 어렵게 하는 체면 문화
영어 유치원, 30대부터 망가뜨린다
학원비, 생활비 최고 항목
자녀 교육비 때문에 강남에서 탈출한 변호사
대학은 무조건 서울? 아니다!
안전한 노후 자금 흔드는 남매 결혼 비용
이 정도면 위의 내용을 하나씩 설명하지 않아도 참조틀을 낮혀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버드 나왔어도, 대기업 임원이었어도, 의사나 변호사가 직업이어도 참조틀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모든 것이 망가지는 시스템 안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풋볼 선수들 중 인생의 마지막에 부도로 허덕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자식을 버려라!
노후 준비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바로 자녀 교육비다. 자녀의 장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는 노후자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자녀를 위해 희생하려고 한다. 부모로서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어디까지 투자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부모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버리라는 것이 진짜 의도가 아니다. 자녀도 살고 나도 살자는 것이다. 저자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현금흐름표가 나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예를들어 서울로 학교를 보내는 옵션과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는 옵션, 아니면 서울 강남에서 사는 것과 경기도 인근에서 살때의 변화 등을 현금흐름표로 비교하면서 고객들을 설득한다. 이렇게 숫자에 근거하여 고객들을 설득하고 난 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설계한 후 성공담을 책에 담았다.
자신의 재정 규모를 충분히 검토해서 결혼 자금으로 얼마를 줄 수 있는지 자녀가 대학에 다닐때부터 미리 말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처음에 귀담아 듣지 않던 자녀도 반복해서 말해주면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럼 자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금액 안에서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버리는 것이 아니다. 다같이 살자가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인 것이다. 무조건적인 희생이 살리는 방법만이 아니다.
결혼 총액제
결혼 총액제는 예비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에 쓸 비용을 미리 하나의 통장에 넣어서 예산을 잡고 지출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결혼 이후 마구 날아오는 카드 대금 명세서로 인해 생기는 불화를 막고, 올바른 결혼관을 갖게 한다. 신혼 부부에게는 모든 것들이 새롭겠지만, 그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돈의 흐름의 투명성이라 생각한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모든 단계를 파악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불신이 생기게 된다. 돈은 발과 날개가 달려 있어 우리가 트랙킹하지 않으면 어디론가 항상 새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혼 총액제와 같은 시스템은 결국 부모들의 올바른 가르침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결혼 총액제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시스템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체면을 중시할 경우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재무 상담과 건강 프로그램을 하나로 뭉친다?
이제는 재무 상담을 단순히 돈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 고객의 건강과 운동 프로그램까지 연계하여 함께 플랜을 짜주는 경우도 있다. 재정적인 부분이 해결되어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건강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부자가 더 건강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두가지가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면 충분해?
유투브 혹은 신문 기사에는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우리의 노후가 보장된다. 이러한 선정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지도 않는다. 재무 상담을 하면서 만난 고수익 직종을 가진 사람들, 변호사, 의사 등의 상담을 들어보면 그들 나름 또한 어려운 사정들이 있다. 그런데, 청소부를 하면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사정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있다.
노후 준비에 있어서 젊을 때 고생하며 얻은 경험과 검소함은 큰 자산이 된다. 가난 속에서 검소하고 근면한 삶의 방식이 생활 습관으로 정착됐다면, 적은 연금으로도 충분히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에 일자리를 다시 구할 때도 가난에 익숙한 사람은 유리하다. 청소부나 경비원 등의 일자리를 구할 때, 자존심을 내던질 필요도 없고, 힘 빼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얼마면 충분해? 라는 질문에 자신만이 그 정답을 가지고 있고, 그 정답 또한 자신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재무 상담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이 정답인지도 아는 지 모르는 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 삶의 방식이 정답인지 묻지도 않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살고 있는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의 습관을 그대로 닮아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부모의 노후 준비가 자녀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말이 이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부모가 안정된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은 곧 자녀의 미래를 자유롭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은 자녀가 사회에서 살아갈 좋은 스펙을 만들어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Fail to plan, plan to fail - 은퇴 준비가 부족해도 괜찮다. 하지만 계획이 없는 무계획은 문제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은퇴 준비 과정은 큰 그림을 그려보았을 때 비슷했다. 물론 제도의 차이점은 있지만, 결국 자신이 그 정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일하였다. 얼마가 필요해? 라는 질문보다 나를 먼저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