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리뷰어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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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죽여 얻은 이익이 모두에게 유익이 된다면 이 희생은 가치있는 일인가?
희생의 가치를 저울질 해서 측정하는 것보다 앞서 누군가를 동의 없이 희생시키는 행위는 용서할 수 있는가? 실제로 이러한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날 수 있다. 1884년 영국 선원 4명이 작은 구명 보트에서 표류하는 사건이 생긴다. 그들이 가진 식량은 통조림 캔 두개, 그리고 물은 없었다. 4명의 이름은 이러하다. 토머스 더들리 선장 그리고 에드윈 스티븐스 항해사, 에드먼드 브룩스 그리고 이제 막 배를 타기 시작한 17살 리처드 파커이다. 이들은 통조림 캔 두개와 잡아 올린 바다 거북 한마리로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 사건의 핵심
조난 19일째, 가장 어린 선원 리처드 파커는 바닷물을 마시고 탈이 나 쇠약해진다.
선장 더들리와 항해사 스티븐스는 파커를 살해하고 그의 시신으로 나흘간 생존한다.
구조된 후,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와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 윤리적 질문
이 사건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다뤄지며,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공리주의적 관점: 최대 다수의 생존을 위한 최소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칸트적 관점: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어야 하며, 타인의 동의 없는 희생은 절대적으로 잘못된가?
자유주의적 관점: 개인의 권리는 집단의 이익보다 우선되는가?
샌델은 이 사건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도덕적 직관과 철학적 사유로 확장시킨다.
🕊️ 질문에 대한 성찰
“희생의 가치를 저울질해서 측정하는 것보다 앞서, 누군가를 동의 없이 희생시키는 행위는 용서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단순히 생존의 딜레마를 넘어서, 인간 존엄성과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파커는 동의하지 않았고, 선택권도 없었다. 그를 죽인 행위는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졌지만, 법은 이를 살인으로 규정했고, 사회는 이를 도덕적 경계의 침범으로 보았다.이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생존의 극한 상황에서도 윤리의 기준은 무너져도 되는가, 아니면 그 기준이야말로 인간됨의 마지막 보루인가.
⚖️ 판결 요약
법원: 영국 고등법원 (Queen’s Bench Division)
판결일: 1884년 12월 9일
주요 판단:
생존을 위한 필요성(necessity)은 살인에 대한 법적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될 수 없으며, 도덕적 판단을 법적 판단으로 대체할 수 없다.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왕의 자비로 6개월 징역형으로 감형되었다.
이 판례는 이후 전 세계적으로 형법에서의 필요성 항변의 한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고, 특히 윤리적 딜레마와 법적 책임의 경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법적 사형이 왕의 자비로 6개월로 감형되었다. 사형에서 6개월 징역. 너무나 큰 차이이다. 당시 사회적 반응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 더 부당하다"고 했다. 이 격차는 단순한 법적 판단이 아닌, 정의와 자비, 원칙과 현실 사이의 기준을 묻는 질문이었다.
이러한 사전이 우리 앞에 일어나질 않길 소망한다. 결코 일어나지 않길 기도하지만, 만약 당신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기준이 당신에게 적합한지 생각해볼 문제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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