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리뷰어
- 36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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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뉴스의 첫 화면은 홍콩 아파트 대화재 사건이었다. 웅장한 건물이 검게 타면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수많은 기사 중, 나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은 본능을 자극하는 극적인 정보이다. 언론은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기사들에 시간과 돈을 허비하지 않는다. 고결하고, 숭결한 이야기들도 간혹 우리의 주목을 끌지만, 이것은 공포 본능에 비해 덜 부각된다. 화재, 홍수, 정치적 충돌, 경제 침체 등은 뉴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예전과 같이 종이로 된 신문이 아닌 이상, 이제 극적으로 주목받는 뉴스 몇가지를 클릭, 클릭한 후 하루가 시작된다. 주목 필터에서 벗어난 뉴스들은 나에게 접근 조차 하지 못한다. 오늘도 세상은 우울하고 발전 가능성 없는 것으로 의례히 치부된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확신을 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공포 본능이다.

공포본능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 고마운 선물이기도 하다. 멀리서 달려오는 사자를 보고 가만히 기다렸던 원시인은 없었을 것이다. 달려오는 동안, 그 물체가 사자인지 인식하려 노력하고, 그 다음 도망가야할지, 아니면 싸워야할지 결정하는데, 공포본능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이러한 본능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인간은 그 많은 자연 재해와 맹수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고, 경제력이 올라갔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공포본능이 원시인 때처럼 남아있다. 때로는, 아니 많은 경우에 오히려 이렇게 역전된 우리의 업그레이드된 상황에서 공포본능은 도움보다 해로 남는 경우가 있다.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지레짐작 공포본능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흐리게 만든다.
팩트풀니스의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때 우리 조상의 생존을 도왔던 공포가 오늘날에는 언론인을 먹여 살리는데 일조한다. 이는 언론인의 잘못이 아니며, 그들이 바뀌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런 상황은 뉴스 생산자의 언론 논리 때문이라기보다 뉴스 소비자의 머릿속에 있는 주목 논리 탓이 더 크다."
처참한 사건이 내 근처에서 일어났을 때, 우리는 분명 공포본능을 따라야할 것이다. 그 때에는 우리의 모든 센서가 이 공포에 반응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일단 그 공포가 지나가면, 우리는 다시 머리를 식히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1929-1933년 (4년) 동안 항공기 사고 사망자 (100억 승객 마일당 연간 사망자 수) 2,100명이었다. 현재는 이것이 거의 1에 가깝다 (사망자가 1명이 아니라, 100억 승객 마일당 연간 사망자 수). 2016년 총 4000만 대의 상업 항공기가 무사히 하늘을 날랐다. 치명적 사고는 10대. 이것은 확률상 0.000025% 이다. 그러나, 무사히 착륙한 비행기는 뉴스에 실리지 않고, 사고 소식만 우리는 접하게 되며 이 때 우리의 공포본능을 더 자극하게 된다.
공포는 순간의 생존을 지켜주지만, 데이터는 장기적 희망을 보여준다. 우리는 두 시각을 함께 품어야 한다.
✈️ 항공 안전 통계의 의미
1929–1933년: 100억 승객 마일당 연간 사망자 수가 약 2,100명
현재: 같은 기준으로 거의 1명 수준까지 감소
2016년:
상업 항공기 운항 횟수: 약 4천만 회
치명적 사고: 10건
확률: 0.000025% (즉, 400만 번 비행해야 1번 사고가 날 정도로 희박)
이 수치는 항공 안전이 지난 세기 동안 얼마나 비약적으로 개선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뉴스는 사고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보다 훨씬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 메시지의 확장
즉각적 반응: 사건이 가까이서 일어나면 공포 본능을 따르는 것이 맞다.
사후적 성찰: 그러나 사건이 지나간 뒤에는 머리를 식히고, 장기적 추세와 개선된 현실을 되새겨야 한다.
인지 왜곡 경계: 뉴스는 극적인 사건을 강조하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실제 세계보다 더 어둡게 보인다.
균형 잡힌 시각: 공포 본능을 인정하되, 데이터와 사실을 통해 세계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