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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워싱턴 리뷰어

말씀으로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 직접 손을 쓰셔서 병자를 낫게 한 예화이다. 왜 모든 것이 가능했던 그 분께서 직접 침을 뱉고, 진흙을 만들어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까지 가서 맹인에게 씻으라 명했을까? 요한복음 9장을 통해 이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다 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맹인의 사건은 단순히 예수가 병자를 고쳤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뒤늦게 쓰여졌으며, 이미 많은 제자들이 순교와 박해를 당한 후에 쓰여졌다.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이제 하나의 전설로 여겨지고 있던 그때, 사람들에게 요한은 일침을 놓은 책,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이다.


예수님은 맹인이 된 이유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라고 말씀하였다. 태생부터 맹인이었던 자는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보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보지 못하는 지 조차 알지 못했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신 사건과 동일하다. 죄 속에 있어, 어둠 가운데 거하며 빛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둠에서 빛을 보여주신 것이다.

 

요한복음 9장 뒷부분에 나오지만, 맹인은 바리새인들에게 불려가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그대로 얘기했을 뿐인데, 출교를 당하고 만다. 출교는 단순히, 종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유대 사회에서 아예 쫓겨나는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알고 지내던 사회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더 이상 유대 사회에서 구걸을 할 수 도 없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다시 직접 찾아가신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방법이다. 내가 전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할 때, 무엇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실 때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내가 진리를 탐구해서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 구원하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조건없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다. 내가 예수를 믿었다고 말할 때 이것은 단순한 인식의 순서이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순간은 내 인식의 타이밍이지, 하나님의 타이밍은 우리를 창세전부터 계획하고 기다리셨다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이를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맹인은 예수님께서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는 과정은 전혀 보지 못했다. 우리는 맹인과 같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 모든 과정은 예수님께서 연출하신 것이다. 나의 노력과 희생, 더구나 믿음이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다.


9: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9: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9: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9: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9: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맹인이 구원 받은 시점은 예수를 주로 시인한 때가 두번째 만남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예수님과의 첫만남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맹인이 주를 그리스도로 믿은 시점은 이미 그는 구원받은 후였다. 즉 내가 예수님을 인식하였때가 구원받은 시점이 정확하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구원 사역은 태초 전부터 예수님께서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맹인인가?

이 스토리에서 가장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보는 자들은 진정한 맹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지 못한 자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9: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9: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9: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9: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9: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9: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9: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맹인에게 두번이나 동일한 것을 묻자 맹인은 기가 막힌 답변을 한다. 내가 말했는데도 너희는 듣지 않았잖아!  즉, 맹인을 신문하던 바리새인들은 진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을 맹인이 말하길 바랬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보는 자가 맹인이 되고, 보지 못하는 자가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를 의미한다. 나의 삶 가운데 나를 맹인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정말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렇게 직접 찾아오셔서 구원을 완성시켜 주신다.


9: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9: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9: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9: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9: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맹인은 죄인이었을 뿐이다. 반면 예수님에게 있어 맹인은 하나님의 뜻하심을 나타낼 수 있게된 소중한 인물이다. 이 맹인에 대해 제자들 역시 누구의 죄로 인해 태어나면서 맹인이 되었냐고 묻는다. 그것도 이분적 사고였다 (부모의 죄 vs 자신의 죄 vs 누구의 죄) 우리의 상황은 꼭 죄로 인해 발생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스스로 만든 죄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가지로 치부하면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믿나이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1)믿음으로 (2)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에는 2가지 영역이 있다. 이것을 로마서에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표현하였다.

첫번째 믿음을 통해서 두번째 믿음에 이르게 한다. 앞의 (1)믿음이라는 단어는 방법으로 쓰였고, 뒤의 (2)믿음은 목적지로 사용되었다.


첫번째 믿음의 의미는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로 주시는 구원의 총체적 표현의 믿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칭의라 한다. 우리가 인생길을 아무런 생각없이 가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위에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가 죄인되었을 때 아무런 조건과 선한 행위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은혜를 의미한다. 이를 칭의 (Justification)라고 하며, 이것은 내가 의로워지려고 노력해서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나를 하나님께서 칭해주었다는 의미이다. 맹인의 믿음은 이 첫번째 영역부터 시작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직접 찾아가셨다는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의미하는 믿음이 바로 이 첫번째 믿음을 의미한다. 이 믿음은 내 노력과 결단에 의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이때의 믿음은 율법과 상반된 단어라 생각하면 된다.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두번째의 믿음은 내 노력과 결단, 그리고 행위를 의미한다. 이 맹인이 내가 믿는다고 고백한 것이 바로 이 두번째 믿음의 영역이다. 즉, 구원받은 자들이 살아가야 할 이 땅의 거룩하고 순결한 삶의 과정 속에서 필요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하는 것 바로 성화 (Scantification)을 의미한다.





침으로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서 씻게 한 이유


흙이라 하면 아담을 연상하게 된다. 히브리어로 아담은 사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예수님의 침, 예수님을 상징하는 몸이 흙과 (사람과) 어우러져 가리워진 눈에 입혀지고, 그 보혈로 씻기었을 때 우리는 영적인 눈을 뜬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진흙을 맹인의 눈에 바르고 씻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말 한마디로 맹인을 고칠 수 있으셨던 분이다. 하지만, 이 맹인은 진실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다.



 이 포스팅은 한몸 교회 이수용 목사의 설교를 내 버전으로 재해석 했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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